"연습 후 앓아눕기도"…'뮤지컬 20년' 정성화의 새 도전 [인터뷰+]

입력 2024-03-14 08:00  


"'노트르담 드 파리'를 하면서 느낀 게 '내가 세상에서 최고는 아니었구나'라는 거예요."

뮤지컬 배우 정성화(49)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 콰지모도 역으로 새로 합류해 느낀 점을 말하며 거듭 '겸손'을 강조했다. 2004년 처음 뮤지컬에 발을 들여 올해로 20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는 그는 15세기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을 지키는 종지기 콰지모도로 또 한 번의 도전과 마주하고 있다.

올곧고 기개 넘치는 '영웅' 속 안중근 의사의 모습은 정성화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다. 여장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내는 것도 이젠 어느 정도 친숙하다. 하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정성화는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이다. 등은 잔뜩 굽었고, 다리를 연신 절룩거린다. 얼굴은 일그러져 있고, 말투는 어눌하다.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소설을 무대로 옮긴 이 작품에서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향한 비극적 사랑을 그리는 콰지모도의 모습이다.

정성화는 6년 만에 돌아온 이번 한국어 버전 공연에 양준모와 함께 합류해 '콰지모도의 대명사' 격인 윤형렬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윤형렬이라는 걸출한 배우가 300회 이상 공연했다. 여기에 나와 양준모가 '뉴비(초심자)'가 되지 않았냐"면서 "첫 연습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형렬 씨가 도움을 많이 줬다. 노하우를 비밀처럼 안 알려주는 게 아니라 정말 세세한 것까지 다 쏟아냈다. 그런데도 나와 양준모 씨는 혼란을 겪었다"며 웃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처음 접한 건 2009년 무렵이었다고 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정성화는 "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음악' 때문이었다. 송스루(Sung-through,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극)'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는 음악성이 뛰어난 대표적인 작품이다. '대성당의 시대',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등의 넘버가 이미 전 세계인들에게 친숙하고, 특히 '아름답다(BELLE)'는 프랑스 음악 차트에서 44주간 1위를 차지하는 진기록을 쓰기도 했다.

정성화는 "'이렇게 좋은 음악이 있구나'라고 느껴 언젠가 한 번은 공연을 꼭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면서도 "그동안 계속 다른 공연과 겹치기도 했고, 윤형렬 배우가 워낙 잘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내가 가서 괜히 폐를 끼치는 거 아닌가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디션 공고가 뜬 걸 보고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무대에 직접 오르니 역시나 음악이 갖는 힘이 매우 컸다는 그였다. "저 스스로 음악을 즐기고, 관객 여러분들도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즐기면서 공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행복해요. '노트르담 드 파리'가 가진 여러 에너지가 있는데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게 음악의 에너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상대로 훌륭했던 게 음악이라면, 예상외로 감탄한 건 무용이었고 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 노래·연기하는 배우와 춤을 추는 무용수를 나누어 예술성을 극대화한 작품이다. 극 처음부터 끝까지 에너지 넘치는 무용수들의 군무가 시선을 끈다.

정성화는 "앙상블들의 위대한 몸짓을 보고 '겸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하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내 것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 사람들한테 칭찬을 많이 받으면 텐션이 올라가 자기가 세상에서 최고인 것처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건 정말 바보 같은 거였다. 이 작품만 1000회 공연한 친구가 있었고, 윤형렬 배우도 300회나 하지 않았냐. 존경스러운 사람이 많은 작품"이라고 고백했다.

그 안에서 정성화 역시 자신만의 콰지모도를 구축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청아한 콰지모도'라는 관객 평가에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고민하고, 캐릭터를 재정립하는 시간을 거쳤다고 했다.

정성화는 "처음 연습할 당시 음악감독님과 연출님이 내 목소리로 노래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막상 그렇게 하니 너무 청아한 목소리의 콰지모도가 되는 것 같더라. 추악한 면이나 몸이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표현할까 혼자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콰지모도라는 인물이 지닌 추한 이미지가 있다. 일단 이게 관객들에게 그대로 잘 전달되는 게 중요했다. 두 번째로 그게 연민의 정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저음역을 많이 쓰고, 발음도 너무 또렷한 발음보다는 알아들을 순 있지만 약간 어눌한 발음을 연구해서 무대에서 적용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 "콰지모도는 등이 불편한 친구라 최대한 낮은 자세로 무대에 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왼쪽 다리로만 걸어야 하는데 해보면 정말 어렵고 힘들다. 처음 연습했을 때 하자마자 며칠 앓아누웠다. 그 뒤로 근육 훈련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쌓은 노력은 절절하고 가슴 아픈 정성화 표 콰지모도로 호평받고 있다. 다만 '영웅' 이미지가 너무 강했던 탓에 KBS '열린음악회'에서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를 부른 영상에는 '일어나요. 독립운동해야죠'라는 댓글이 달렸던 바다. 이에 대해 정성화는 "사람들은 그렇게 바라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더 애절하게 할 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반성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작품을 했을 때 그것이 생각나지 않도록 하는 게 배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에서 작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이번 목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연민의 정이 느껴지는 콰지모도가 됐으면 해요. 처음에 등장하자마자 모습이 충격적인데 공연이 끝날 때쯤엔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해 보이고 나라도 저 친구를 사랑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연민의 정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정성화가 걸어온 길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199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활동을 시작해 드라마 '카이스트'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걸을 줄 알았던 삶은 한순간 달라졌다. "거짓말이라도 한 듯 일이 끊겼다"고 했다.

간절하던 그때 만난 게 바로 뮤지컬이었다. '아이 러브 유'로 뮤지컬을 접한 정성화는 "재밌었다. 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 지금도 연습 과정, 연습량을 계속 발전해나가는 걸 철칙처럼 가지고 있다. 그래서 20년이나 지난 줄 몰랐다"며 미소 지었다.

"'정성화 대박'이라는 말을 정말 좋아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정성화 대박'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내가 오늘을 잘 살아왔구나'라고 생각하게 돼 그 말이 기억에 남아요. 아마 기사가 나가면 이 말을 또 많이들 써주실 것 같은데요"(웃음)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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